The Lost Dialogue

"단기 4342년 늦은 가을의 LDK"

2009년 10월 24일 토요일의 기록이다.

내 발로 스스로 나선 등산은 이게 겨우 두 번째다. 나이가 들면서 무슨 바람이 들었는진 모르겠지만, 단풍을 보러 지리산 뱀사골 산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지리산에 얽힌 추억이라곤 반달곰 36호와의 조우 밖에 없던 내게, 불타는 단풍과 야간 산행의 추억을 안겨준 아퀴와 그 일행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자, 지리산으로 들어가볼까요?


지난 주는 설악산의 단풍 시즌, (그래서 인간 정체 현상까지 발생했다던) 그리고 이번주는 지리산 뱀사골이 좋다는 제보가 아퀴를 통해 들어왔다. (그리고 다음주는 내장산이랍니다. 사람 엄청 많겠군.) 마침 특별한 스케줄도 없고, 오랜 만에 바람도 쐬고 싶어서 아퀴의 단풍 나들이에 조인하기로 했다.

지난 한 주 동안 너무 불규칙한 생활을 한 관계로,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건 정말 쉽지 않았다. 간신히 아침 8시에 일어나서 9시에 대전에서 날 픽업하기로 한 아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째 좀 출발부터 불안불안 하던 그들이 11시 반이나 되어 도착했다.

우리가 계획한 일정은 지리산 뱀사골에서부터 간장소에 이르는 왕복 약 4-5시간 정도의 코스다. 대략 12시쯤 지리산 근처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오후 1시쯤부터 천천히 구경을 하다가 늦어도 6시까지는 내려와서 저녁을 먹고 적어도 8시에는 귀환을 시작하는, 이른바 12-6-8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12시가 넘어서 대전을 빠져나간 우리가 지리산 뱀사골에 도착한건 이미 오후 3시가 살짝 넘어서였다.

뱀사골에서 간장소 올라가는 길에 놓인 다리.
주요 포인트 마다 이렇게 운치있는 포토스팟이 마련되어 있다.
질리도록 단풍 보기에 좋은 코스다.


10월에 지리산은 오후 5시 55분이면 일몰이 완료된다고 해서, 이건 뭐 왕복 2시간이나 걷고 돌아가려나 싶었는데, "오늘을 놓치면 1년 뒤다!" 라는 각오로 그래도 꿋꿋이 끝가지 올라가보기로 했다. "사진 그만 찍고 어서 내려가지 않으면 해 떨어진다!" 는 하산객들의 충고를 묵묵히 외면한채, 간신히 목적지였던 간장소에 도착하긴 했는데 이미 오후 5시였고, 해는 이미 오후 3시쯤 부터 뉘엿뉘엿 지고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왠지 간장소까지 오르면 절벽으로 지리산 밑도 내려다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그런건 없어 적잖이 실망도 했다. 그런걸 보려면 좀 더 노력해서 화개재까진 올라가야하나보다.

이 사진의 포인트는 단풍이 아니라 텅텅 빈 산 중이다.
이 시간에 산을 오르는 팀은 우리 뿐이었다.
지리산에 왠지 우리만 들어와있는 느낌?
사실 중간에 한 팀 있었는데 우리가 순식간에 추월했으며,
그들은 곧 사라져갔다.


중간 중간 일몰시간과 하산 소요시간 안내가 친절하게 적혀있었는데, 여기서부터 하산까지는 2시간이라 적혀있었고, 대략 50분 후면 해가 완전히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내심 생각하기론 그래도 하산은 빨리할 수 있고 우린 아직 젊기에, 한 시간이면 내려가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난 시점에, 우린 정확히 반 쯤 내려온 상황이었고, 그리고 해는 이미 다 떨어져서 완전히 컴컴해졌다. 귀신 얘기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음. 그래서 귀신 얘길 좀 했다.

언뜻보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퀴가 소지한 애니콜의 '손전등' 기능 덕분에 무사히 비틀비틀 하산은 했다. 내려가면서 우리 말고도 용감한 (하지만 고가의 프로페셔널 등산 장비를 풀셋으로 갖춘) 다른 하산객들도 만나서 왠지 든든했다. 하지만 역시 핸드폰이 없었더라면 많이 힘들었겠지. 다음부턴 나도 손전등 기능이 있는 핸드폰을 사야겠다.

어쨌든 본격 단풍 사진으로 마무리하자.



단풍의 절정이 확실했다.
며칠 더 지나면 이들 모두가 낙엽이 되겠지.
무리한 일정이었고, 또 내려가는 내내 비록 해는 지고 있었지만,
오길 잘 했다는 느낌은 변하지 않았다.



다음엔 꼭 일찍 와서 화개재까지 가봐야지.
뭐, 이런 다짐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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