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st Dialogue

"단기 4342년 늦은 가을의 LDK"

일주일 전 화요일 아침, 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께서 매우 위독하시다는 메일을 받았고, 미처 답장도 하기 전, 그로부터 약 한 시간 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서둘러 서울로 올라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 연세는 올해로 벌써 아흔이셨지만, 증조 할머니께서 백세 가까이 건강히 사시는 것을 보아온 내겐, 얼마 전까지도 그렇게 건강하시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건 내 부모님이나 주위 친척들에게도 마찬가지었던 것 같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추석을 포함한 지난 한 주는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도 모르게 쏜살같이 지나갔다. 집안의 장손이자 둘째 상주로서 그동안 안일하게만 생각해온 책임과 앞으로의 삶의 무게를 바로 느낄 수 있었고, 장남으로서 눈 앞에 닥친 정말 어려운 일들에 침착하게 대처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앞으로 내가 어떤 자세와 각오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고민도 많이하고 더불어 얼마간의 결심도 함께했다.

추석에 삼우제를 지내고 하루의 휴식 시간을 가진 뒤, 오늘 대전으로 돌아왔다. 지난 주에는 일도 많았고 가족과 함께 있어서 미처 느끼지 못한 감정이 내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한다.

작년 추석 때, 할아버지 댁을 방문해 나눈 대화들이 떠오른다. 내가 어릴 적 어린이날 즈음마다 집에 방문하셔서 선물로 챙겨주시던 특이한 공구들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을 계속 할아버지 댁에서 보냈기 때문에, 돌이키면 돌이킬 수록 떠오르는 것이 너무 많다. 어렸을 때는 너무 넓어서 길을 잃을 것만 같았던 할아버지 댁에서 대추를 따던 일, 함께 어린이 대공원에서 코끼리 열차를 타던 일들이 떠오른다.

올해 봄 찾아뵈었을 때만 해도 계속 내게 언제 졸업하는지, 졸업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내가 전공하는 분야의 전망에 대해 의견을 주실 정도로 정말 건강하셨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마지막으로 찾아뵈었을 때는 계속 주무시기만 하셔서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했는데, 지금 너무 후회가 된다.

적어도 앞으로는 이런 후회없이 살겠다고 결심했다.

'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종하는 법  (5) 2010.01.05
가을은 이미 온데간데 없다.  (4) 2009.11.25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2) 2009.10.05
표정 관리  (4) 2009.04.30
고독한 스승 (Lean on me)  (2) 2009.03.19
변명은 추하다.  (2) 2008.12.21
1 ··· 5 6 7 8 9 10 11 12 13 ··· 657 
분류 전체보기 (657)
느낌 (144)
아트 앤 싸이언스 (451)
표현 (3)
대기권 밖 이야기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