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st Dialogue

"단기 4342년 늦은 가을의 LDK"

한동안 굉장히 속을 썩이는 코드가 있었는데,  별 기대없이 펼친 Effective STL 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STL std::set 자료구조에 한 번 들어간 엘리먼트는 본래 업데이트가 안된다. 예를 들어,


set<int> s;
s.insert(1);
s.insert(2);
set<int>::iterator si = s.find(2);
(*si) = 10;     // 이 부분 때문에 이 코드는 컴파일이 안된다.

컴파일이 안되는 경우는, 저렇게 한 번 들어간 엘리먼트의 값을 바꿀 경우 전체 자료구조의 정렬된 상태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예를 int 타입으로 들었기 때문에, 왜 굳이 저 값을 바꿀려고 하는지 아무도 이해 못할 것 같은데, 사실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set<sibilla::path_t>::iterator where = v->find(p);
if (where != v->end()) 
    where->update_with_new(p);     // 이 부분 때문에 이 코드는 컴파일이 안된다.
else 
    v->insert(p);

path_t을 엘리먼트로 가지는 자료구조가 setv라는 데이터 저장소를 생각해보자. 새로운 데이터인 p가 들어오면 이게 저장소 v에 있는지 검색하고 없으면 새로 넣되, 있을 경우 기존의 값을 업데이트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쓰면 아주 깔끔한데, 문제는 저게 컴파일이 안된다는 거다. 읽기 전용 영역을 건드린다는 에러가 난다. 몇몇 STL 구현에서는 컴파일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현재 사용 중인 g++ 4.2.4 환경에서는 컴파일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다음과 같이 해야만 했는데,


set<sibilla::path_t>::iterator where = v->find(p);
if (where != v->end()) 
    path_t update_p = *(where);      // (1) 일단 사본을 따로 만들고,
    update_p.update_with_new(p);  // (2) 사본을 업데이트 하고,
    v->erase(where);        // (3) 원래 있던건 지우고,
    v->insert(update_p);    // (4) 업데이트한 사본을 다시 저장한다.
else 
    v->insert(p);

위 코드가 나름대로의 정석 플레이라 할 수 있는데, (1), (3), (4) 작업이 언뜻보기에도 굉장히 불합리해보인다. 게다가 이 path_t  자료구조가 크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내부에 vector가 하나 달려있는데, 이것의 크기는 영원히 늘어날 수 있다. 이론상 1600만개 정도를 최대치로 보고 있다.) 이걸 꺼냈다가 다시 넣는건 분명 좋은 생각이 아니다. update_with_new 함수에서 액세스하고자 하는 path_t 의 멤버변수는 path_t::operator< 에서 사용하는 멤버가 아니므로, set 자료구조의 정렬 상태를 망가뜨릴 염려도 없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해결을 했다.


set<sibilla::path_t>::iterator where = v->find(p);
if (where != v->end()) 
    const_cast<path_t&>(*where).update_with_new(p);     // 이렇게 캐스팅을 한다.
else 
    v->insert(p);

자, 이제 컴파일도 잘 되고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정도로 빠른 코드가 나왔다. 대충 보니, 이전에 2011초 걸리던 작업이 이제 40초만에 완료가 되었다. 50시간 걸리던 코드가 이제 잘 하면 1시간 안에 돌아갈 것 같다.


* 사실 이렇게 저 부분만 놓고 보면 문제가 명확해 보이지만, 한참 테스트를 할 때는 엉뚱한 곳을 계속해서 최적화하고 있었다. path_t 타입 안에는 무한히 늘어나는 vector가 하나 있다고 위에서 말했는데, 사실은 vector가 아니라 set이었다. 프로그램이 너무 느리다보니 막연히 path_t 안에 들어있던 set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데이터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set을 검색하는 오버헤드가 문제라 생각하고 이걸 vector로 대체한 것이었다. 그냥 vector에 push_back만 해두고 일이 다 끝난 다음에 일괄적으로 set으로 변형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바꿔봐도 여전히 느리더군.

* gprof로 프로파일링을 해보니, 결국 문제는 엉뚱하게도 path_t의 대입 연산자 (operator=) 에서 발견 되었다. set에서 path_t 타입을 꺼내고 또 다시 넣는 과정에서 생기는 오버헤드가 진정한 문제였던 것이다.

* 역시 문제는 정공법으로 풀어야한다. 프로파일러를 사용하자.

* 막상 인터넷에서 검색할 땐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 힘들었는데,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책에서 해답을 찾았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전하고 많은걸 검색할 수 있어도, 여전히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가 많다.

복종하는 법

느낌 2010.01.05 17:23 by LDK
2010년의 첫 글이 될 것 같은데, 우울한 이야기군.

올해 새로 선물 받은 프랭클린 플래너의 지난 주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프랭클린 플래너 48절 수첩으로 제본된 다이어리인데, 꽤 쓸만하다. )

"복종하는 법을 배우지 않은 자는 좋은 지휘관이 될 수 없다. "
 - 아리스토텔레스 


의미심장하고 좋은 말이라 생각해 여기 저기에 인용하고 다니다가, 그래서 올해는 더러운 성질을 많이 죽이고 (뭐 이미 다 죽여서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복종하는 삶의 매력을 느껴보자! 같은 뉘앙스의 발랄하고 재밌는 글로 시작해 볼 생각이었는데, 제목은 똑같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른 뭐 그런 완전 빵꾸똥꾸 같은 글로 2010년을 시작하게 된다.

사실 오늘 이런 일(머리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사소한 복종을 하면 좋은 일)이 있기 전까지는 잊고 있었겠지. 하지만 깨달았으니 오히려 다행이다. 내가 가볍게 뱉는 `남이 한 말'에는 나의 아무런 치열한 고민도 또 삶의 무게도 담겨 있지 않기 때문에 정말로 하찮은 것임을 알게 되었으니 오히려 다행이다.

내가 과거에 경험해 알고는 있었겠지만 이 글을 쓰기 직전까지 아주 잠시 잊고 있었던 바로 그 것 - 복종하면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묵묵히 복종을 했으니 일단 나는 일 보 전진한 것이다. 이 길의 끝에 평화와 정의가 있을지, 아니면 비굴한 인생이 있을지 뭐가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분 좋게 복종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순간이, 바로 내가 이 새해에서 또 하나의 결실을 맺고 또 새로운 도약의 준비를 마친 그런 순간이 되겠지. 라는 심정으로 기분을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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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주 전인가? 오랜 만에 집에 갔는데 간 밤에 비가 와장창 쏟아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대전으로 돌아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사방에 낙엽이 가득 떨어져 장관이더군.

이 동네 낙엽은 유명해서 여기 낙엽을 퍼다가 남이섬에 쏟아붓고 '송파 낙엽의 길'을 만든다던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예전 같았으면 당연히 잠깐 멈춰섰을 텐데. 그리고 보기 좋은 곳을 찾아 카메라를 꺼내 사진도 수백 장 찍으며 돌아다녔을 텐데, 왠지 모르게 그러지 않았다.

달리는 차 안에서 그냥 카메라를 뒤로 돌리고 한 장 찍었다.



언제부터인가, 난 과거에 하던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요즘은 블로깅을 거의 하지 않는다. 나만의 쓸데없는 것으로 가득하던 홈페이지도 이젠 거의 업데이트 되지 않는 블로그 뿐이다. 영화도 보지 않는다. 이 학교의 캠퍼스는 꽃이 핀 봄이 가장 절정이다. 이걸 꼭 사진에 담고 싶은데 그걸 지금 몇 년째 미루고만 있다.  

다행히 2004년 가을에 저장해둔 그 시절 홈페이지를 찾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뭘 더 하게 된 것이 아님을 깨닫곤 한다. 

그저 마음에 여유가 너무 없다. 그래서 시간을 되돌려 보면 대체 내가 뭘 한건지 후회만 가득하다. 20대엔 시간을 무의미하게 버리지만 않으면 된다던데 뭐라도 건설적인 일을 찾아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된다는데, 왠지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불안하다. 또 이렇게 불안해 하다보니 마음엔 더 여유가 없어진다. 그리고 또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그리고, 이미 가을은 온데간데 없다.  

누가 내 가을을 가져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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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내 개인 서버가 심정지를 일으켰다.

이 컴퓨터는 내가 대학을 입학하면서 부모님께 받은 것으로, 나와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으며, 또한 내가 개인적으로 처음이자 또한 마지막으로 소유했던 데스크탑 PC이기 때문에 이건 정말 내 목숨과도 같다. 여튼 이게 며칠 전 학교 정전을 버티지 못하고 뻗어버렸다.

분명히 정전 전에 잘 셧다운을 시켜뒀었는데, 전기가 돌아온 후에 이 놈이 다시 켜지질 않았다. 하드디스크를 하나 더 두고 매일같이 백업을 해두곤 있었지만, 이 블로그를 포함한 지난 10년의 데이터를 발굴해서 또 다른 곳을 찾아 옮길 것을 생각하니, 가뜩이나 요즘 바빠죽겠는데, 정말 눈 앞이 어질어질 하더군.

결국 문제는 파워가 맛이 간 것이었고 (정말 맛이 갔다. 전원 케이블을 꽂기만 하면 전원 팬과 CPU 팬이 아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전원 버튼은 누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약 5분 간에 걸친 파워 이식 수술 끝에 결국 다시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옛날 컴이라 파워 연결선도 몇 개 없고 이식은 정말 쉽다. 귀찮아서 문제지. 오랜만에 케이스를 열었더니 안에는 먼지가 가득했고, 심지어 거미줄도 있더군.   

정말 간 만에 한 번 사고를 당하고 나니, 이제 슬슬 이 컴이 완전히 뻗어버릴 때를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벌써 10년을 버텼고 또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으니깐. 그래서 일단 급한 블로그부터 옮겨보기로 했다. 매우 초창기 설치형 블로그라 할 수 있는 태터툴즈 0.9x 버전을 여태껏 써오고 있었는데, 이제 슬슬 남이 관리해주는 환경으로 넘어갈 때가 된 것 같다. 그나마 데이터 형태가 유사한 티스토리나 텍스트큐브가 정도가 대안이더군.

일단 태터툴즈 0.9x 데이터를 태터툴즈 1.x 버전의 데이터로 마이그레이션 하고, 이걸 티스토리에서 불러온 결과가 바로 이 곳이다. 맘에 드는 스킨이 없어서, 그나마 먼저 쓰던 스킨과 가장 유사한 것을 하나 골라서 내 맘대로 좀 고쳐봤다. 텍스트큐브에도 계정을 하나 열어서 데이터를 옮겨놨는데, 거긴 구글 쪽에서 관리를 한대서 살짝 기대를 했으나 지금 상태론 뭐 아무리 좋게 봐줘도 도저히 관리가 되고 있다는 분위기가 아니다. 일단은 그냥 닫아두었으나, 그래도 시간을 두고 지켜볼까 한다.  

지난 4년 동안 함께한 이 정든 스킨과도 당분간 작별이다.



좀 어색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왕 옮겨왔으니 당분간은 정 붙이고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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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생각 없이 로또를 매 주 하고 싶은데, 하지만 한 번에 5천원씩 내는건 부담스럽고, 또 무엇보다도 가서 그거 사고 칠해서 제출하는게 귀찮아서 생각해본 서비스 모델임. 일단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의 그룹을 가정했음. 돈 먹고 튀면 안되니까.

자,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 구현해서 사용해봅시다.

0. 목표 설정
매 주 몇 장의 로또에 도전할 것인지 정한다. 참여인들의 수에 따라 적당히 결정하면 된다. 한 장이 5000원이니깐, 5000원의 배수로 설정한다.

1. 투자
0. 목표 설정에서 결정한 금액을 참여인들끼리 잘 나눠서 낸다. 매 주 혹은 달 단위로 내고 싶은 돈을 유동적으로 정할 수 있으면 좋은데, 200원을 내든 500원을 내든, 원하는대로 투자하면 된다. 이 부분을 편하게 구현하는게 포인트다. 매 주 선택한 금액이 계좌로 자동 이체 되도록 해야한다.

2. 로또하러 갑시다.
이걸 누가 할 지가 중요한데. 뭐 돌아가면서 할 수도 있고, 한 명이 인센티브를 받고 맡아서 할 수도 있다. 이 사람이 서비스의 주체가 될 수도 있다. 번호를 정하는건 알아서 한다.

3. 결과 확인 및 수익금의 분배
투자금에 비례해서 당첨금액을 나눠가지면 됨.


아, 빨리 연구해서 졸업해야하는데 이 무슨 쓸데없는 생각인지.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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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4일 토요일의 기록이다.

내 발로 스스로 나선 등산은 이게 겨우 두 번째다. 나이가 들면서 무슨 바람이 들었는진 모르겠지만, 단풍을 보러 지리산 뱀사골 산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지리산에 얽힌 추억이라곤 반달곰 36호와의 조우 밖에 없던 내게, 불타는 단풍과 야간 산행의 추억을 안겨준 아퀴와 그 일행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자, 지리산으로 들어가볼까요?


지난 주는 설악산의 단풍 시즌, (그래서 인간 정체 현상까지 발생했다던) 그리고 이번주는 지리산 뱀사골이 좋다는 제보가 아퀴를 통해 들어왔다. (그리고 다음주는 내장산이랍니다. 사람 엄청 많겠군.) 마침 특별한 스케줄도 없고, 오랜 만에 바람도 쐬고 싶어서 아퀴의 단풍 나들이에 조인하기로 했다.

지난 한 주 동안 너무 불규칙한 생활을 한 관계로,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건 정말 쉽지 않았다. 간신히 아침 8시에 일어나서 9시에 대전에서 날 픽업하기로 한 아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째 좀 출발부터 불안불안 하던 그들이 11시 반이나 되어 도착했다.

우리가 계획한 일정은 지리산 뱀사골에서부터 간장소에 이르는 왕복 약 4-5시간 정도의 코스다. 대략 12시쯤 지리산 근처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오후 1시쯤부터 천천히 구경을 하다가 늦어도 6시까지는 내려와서 저녁을 먹고 적어도 8시에는 귀환을 시작하는, 이른바 12-6-8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12시가 넘어서 대전을 빠져나간 우리가 지리산 뱀사골에 도착한건 이미 오후 3시가 살짝 넘어서였다.

뱀사골에서 간장소 올라가는 길에 놓인 다리.
주요 포인트 마다 이렇게 운치있는 포토스팟이 마련되어 있다.
질리도록 단풍 보기에 좋은 코스다.


10월에 지리산은 오후 5시 55분이면 일몰이 완료된다고 해서, 이건 뭐 왕복 2시간이나 걷고 돌아가려나 싶었는데, "오늘을 놓치면 1년 뒤다!" 라는 각오로 그래도 꿋꿋이 끝가지 올라가보기로 했다. "사진 그만 찍고 어서 내려가지 않으면 해 떨어진다!" 는 하산객들의 충고를 묵묵히 외면한채, 간신히 목적지였던 간장소에 도착하긴 했는데 이미 오후 5시였고, 해는 이미 오후 3시쯤 부터 뉘엿뉘엿 지고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왠지 간장소까지 오르면 절벽으로 지리산 밑도 내려다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그런건 없어 적잖이 실망도 했다. 그런걸 보려면 좀 더 노력해서 화개재까진 올라가야하나보다.

이 사진의 포인트는 단풍이 아니라 텅텅 빈 산 중이다.
이 시간에 산을 오르는 팀은 우리 뿐이었다.
지리산에 왠지 우리만 들어와있는 느낌?
사실 중간에 한 팀 있었는데 우리가 순식간에 추월했으며,
그들은 곧 사라져갔다.


중간 중간 일몰시간과 하산 소요시간 안내가 친절하게 적혀있었는데, 여기서부터 하산까지는 2시간이라 적혀있었고, 대략 50분 후면 해가 완전히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내심 생각하기론 그래도 하산은 빨리할 수 있고 우린 아직 젊기에, 한 시간이면 내려가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난 시점에, 우린 정확히 반 쯤 내려온 상황이었고, 그리고 해는 이미 다 떨어져서 완전히 컴컴해졌다. 귀신 얘기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음. 그래서 귀신 얘길 좀 했다.

언뜻보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퀴가 소지한 애니콜의 '손전등' 기능 덕분에 무사히 비틀비틀 하산은 했다. 내려가면서 우리 말고도 용감한 (하지만 고가의 프로페셔널 등산 장비를 풀셋으로 갖춘) 다른 하산객들도 만나서 왠지 든든했다. 하지만 역시 핸드폰이 없었더라면 많이 힘들었겠지. 다음부턴 나도 손전등 기능이 있는 핸드폰을 사야겠다.

어쨌든 본격 단풍 사진으로 마무리하자.



단풍의 절정이 확실했다.
며칠 더 지나면 이들 모두가 낙엽이 되겠지.
무리한 일정이었고, 또 내려가는 내내 비록 해는 지고 있었지만,
오길 잘 했다는 느낌은 변하지 않았다.



다음엔 꼭 일찍 와서 화개재까지 가봐야지.
뭐, 이런 다짐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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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ûté의 정확한 발음과 뜻에 대해서, 파리에서 유학 중인 한 형님의 제보에 따르면, goûté 의 발음은 '구떼'가 맞는 것으로 보이나 영어의 'tasted' 정도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역시 '구떼'로 발음되는 goûter의 경우 명사로 쓰일때 '간식' 정도의 의미라던데, goûter를 goûté로 잘못 표기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의미가 있는지는, 진실은 가게 주인님들이 알고 계시겠지.

친구 집이 잠원역 근처인 관계로 몇 년 전부터 3호선 이웃인 신사, 압구정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이 동넨 내가 서울에 25년 넘게 살면서도 발길 전혀 닿지 않던 곳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다. 집(올림픽공원)에서 여기오는 교통이 너무 불편하다. 차로 바로 달리면 15분 정도지만, 지하철 몇 번 갈아타고 버스도 갈아타고 그러다보면 재수 없을 땐 1시간도 넘게 걸린다.

여튼, 그 중에서도 특히 잠원과 가까운 신사동의 가로수길을 걷곤 한다. 이 길에는 분위기 좋은 까페들이 몰려있어서 꽤 유명한데, 밥 먹고 좀 걷다가 커피 한 잔하고 집에 갈 때는 그나마 지하철 타기도 편해서 종종 가게 된다. 예쁜 사람들도 많고, 흐흐흐흐흐.

이 길을 따라 까페들이 확실히 많긴 하지만, 막상 내가 두 번 이상 방문한 곳은 아직은 별로 다양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중에도 유난히 친숙하게 느껴지는 블룸 앤 구떼 (Bloom & Goute)를 소개한다.

꽃과 케익 향기가 가득한 블룸 앤 구떼


블룸은 아시다시피 꽃이고, 구떼는 프랑스어로 케익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여기 주인님들이 영국와 프랑스에서 각각 꽃과 케익 관련 과정을 배우고 오신 분들이라는 전설이 있는데, 난 개인적으로 모르는 분들이므로 진위여부는 확인할 수 없고, 확인할 예정도 없다.

여길 찾아오는 방법은 특별히 없고, 가로수길을 따라 걷다보면 보인다.

신사역 쪽에서 왔을 때는 가로수길 따라 우측편에 보이며, 압구정 쪽에서 걸어왔다면 가로수길 따라 좌측편에 보일 것이다. 2층까지 올라갈 수 있으니 꼭 올라볼 것을 권유하며, 1층에선 길가에 나앉을 수도 있다. 또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사람 몰리는 시간에 가면 장소가 결코 넓지 않기 때문에 사실 조용히 얘기하기엔 좀 번잡한 곳이 아닐까 싶지만, 막상 또 앉아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생각만큼 시끄럽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은, 신비로운 곳이 아닐까 싶다. 꽃 향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에 어딘가에서 보니 이곳을 유럽풍 자연주의 까페라고 소개하더군. 어쨌든 그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기분 좋아지는 곳이다.

식사 하셨으면 커피와 케익 한 조각 함께 하시죠.
이 사진을 찍은게 아마도 작년 크리스마스.
이게 벌써 곧 1년 전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아아아.


여기선 초코 브라우니를 많이들 드시나본데,
난 단호히 이걸 추천함.
아쉽게도 정확한 타이틀이 뭔진 잊었음.
가서 보면 기억날 것 같은데, (생긴걸 보면 저건 아마도 애플 타르트 같다.)
여튼, 주원료는 사과가 분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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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특별히 할 얘기도 없고, 밀린 까페 얘기들이나 하나씩 열어보자.

서울에서 놀다보면 늘 패턴이 비슷하다.

밥 먹고 차 한잔, 또 밥 먹고 차 한잔. 그리고 귀가. 밥과 차 한 잔의 중간 중간에 영화든, 뭐든 볼꺼리나 쇼핑 같은게 들어가는 식이다. 그래서 적당한 밥집과 까페들의 존재는 매우 소중하다. 가끔 먹을 게 없어서, 들어가고 싶은 까페가 없어서 정처없이 헤메다보면 시간도 아깝고 다리도 아프고 상대에게도 많이 미안하고, 여튼 힘들다. 나이가 드니깐 이젠 하루종일 걸어다니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이젠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겐 광화문이 참 놀기 애매한 동네였는데, 밥집 까페의 동선이 잘 안나와서, 결국 명동까지 걸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명동에 간다고 마땅한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광화문 근처에 좀 조용한 까페를 찾아보다가 까페 아모카(Amokka)라는 델 발견했다.

아, 오랜만에 난 이 곳에서 평화를 느꼈다.


광화문 스폰지 하우스 1층에 있다. 조선일보 미술관인지 뭔지 (위 사진에서 창 밖 저 멀리 보이는 건물임) 건너 편이고, 5호선 광화문 역에서 가깝다. 까페 이마와 일민 미술관 앞 대로 건너편 어딘가에 있다.

차 한 잔 시켜놓고 책 보는 사람들, 노트북 켜놓고 회의하는 사람들, 앞에 공터에선 아빠와 아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다. 간단한 식사, 조용히 맥주 한 잔 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요즘 와플 안 파는 까페는 없는듯.
커피 잔이 재밌게 생겼다.


어딜가나 사람들이 넘쳐나는 서울에서는 발품을 팔지 않고선 사람 없는 조용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아졌다. 닭장 같이 밀집한 테이블과 시끄러운 사람들, 요란한 백그라운드뮤직, 카운터에선 엠아이씨를 들고 샤우팅을 해대니, 몸 좀 쉬러 들어갔다가 목만 쉬어나온다. 내가 무슨 콘서트에 온 것도 아니고, 이제 강남이나 명동 같이 사람들 많은 동네는 길을 걷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좀 조용하고 사람 없는 곳을 찾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까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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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화요일 아침, 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께서 매우 위독하시다는 메일을 받았고, 미처 답장도 하기 전, 그로부터 약 한 시간 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서둘러 서울로 올라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 연세는 올해로 벌써 아흔이셨지만, 증조 할머니께서 백세 가까이 건강히 사시는 것을 보아온 내겐, 얼마 전까지도 그렇게 건강하시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건 내 부모님이나 주위 친척들에게도 마찬가지었던 것 같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추석을 포함한 지난 한 주는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도 모르게 쏜살같이 지나갔다. 집안의 장손이자 둘째 상주로서 그동안 안일하게만 생각해온 책임과 앞으로의 삶의 무게를 바로 느낄 수 있었고, 장남으로서 눈 앞에 닥친 정말 어려운 일들에 침착하게 대처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앞으로 내가 어떤 자세와 각오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고민도 많이하고 더불어 얼마간의 결심도 함께했다.

추석에 삼우제를 지내고 하루의 휴식 시간을 가진 뒤, 오늘 대전으로 돌아왔다. 지난 주에는 일도 많았고 가족과 함께 있어서 미처 느끼지 못한 감정이 내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한다.

작년 추석 때, 할아버지 댁을 방문해 나눈 대화들이 떠오른다. 내가 어릴 적 어린이날 즈음마다 집에 방문하셔서 선물로 챙겨주시던 특이한 공구들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을 계속 할아버지 댁에서 보냈기 때문에, 돌이키면 돌이킬 수록 떠오르는 것이 너무 많다. 어렸을 때는 너무 넓어서 길을 잃을 것만 같았던 할아버지 댁에서 대추를 따던 일, 함께 어린이 대공원에서 코끼리 열차를 타던 일들이 떠오른다.

올해 봄 찾아뵈었을 때만 해도 계속 내게 언제 졸업하는지, 졸업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내가 전공하는 분야의 전망에 대해 의견을 주실 정도로 정말 건강하셨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마지막으로 찾아뵈었을 때는 계속 주무시기만 하셔서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했는데, 지금 너무 후회가 된다.

적어도 앞으로는 이런 후회없이 살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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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장에서 점심을 떼우고 바르셀로나 거리를 걷기 전에, 딱 두 개만 보고 돌아가자라고 다짐했는데, 막상 그 때 떠오른건 바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Sagrada Familia 성당이었다. 가는 길에 먼저 도착한 카사밀라엔 별 확신이 없었고 그저 근처에 있길래 들렸지만 매우 좋은 추억을 만들고 왔다.

일단 카사밀라를 둘러본 후에 열심히 걸어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이동했다.

디아고날 길을 따라 계속 잘 걸어보자. 오, 저기 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걸으면 안 보인다.
걸어가는 약 이십 여 분 동안 얼마나 뒤를 돌아봤는지 모른다.


사실 이 짓다가 만 성당은 내가 바르셀로나에 대해서 올림픽 말고 유일하게 들어서 알고 있던거라 할 수 있는데, 바르셀로나라고 하면 다들 이 성당 사진만 들이대길래, 여긴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 성당은 1882년에 공사를 시작했고, 가우디가 1926년까지 맡아서 진행을 했고, 지금 120년이 넘도록 아직도 짓고 있다.

Sagrada는 'holy'라는 뜻이라네. 때문에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성스러운 가족' 성당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이 성당은 예수 그리스도 (가운데 돔), 성모 마리아 (130미터 정도의 가장 높은 첨탑), 그리고 12명의 제자(12개의 첨탑)에 대한 상징물들로 채워질 예정이지만, 내가 보기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돔은 짓다 말았고, 옥수수 같은 첨탑은 달랑 8개 뿐이다. 다 지으려면 이런 속도론 아마도 100년은 더 남았을 거다. 2020년인가에 완공 예정이란 말을 어디서 본거 같은데,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라면 하루에 첨탑 하나씩 올라갈 텐데, 아쉽군.

-> 이건 금강산도 식후경. 목말라 죽겠다.


아, 저 줄 봐라.
일단은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붙어 있었는데,
생각보단 줄이 빨리 빠지는 편이라 금방 들어갈 수 있었다.


오래 기다렸다. 자, 입장~


일단 이 성당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얘기는 이 성당의 입구인 파사드 facade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는 세 개의 파사드가 예정되어 있고, 이들 세 개의 파사드는 각각 예수의 1. 탄생, 2. 영광, 그리고 3. 수난을 상징하기로 되어 있다. 현재 탄생과 수난에 대해선 만들어진 것 같고, 영광 파사드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성당을 두 바퀴를 돌았지만 역시 보이질 않았다. 알고보니 아직 못 만들었다고 한다. 삽질하기 전에 팜플렛을 꼼꼼이 살펴보자.

수난 파사드를 통해 입장하게 되었다.
매표소 위치에 문제가 좀 있다. 왜 시작하자 마자 수난인가!


수난 파사드를 잘 살펴보면 왠 얼굴 없는 마네킹이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액자인지 거울인지 모를 뭔가를 들고 있다. 이 마네킹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녀 '베로니카'이며, 그녀가 들고 있는건 수건이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더니 거기에 얼굴이 새겨졌다는 이야긴 유명하다.

내부


과거 유럽을 좀 돌아다니면서 온갖 종교적 건축물들을 접했는데, 이 성당의 내부는 정말 신비했다. 뭐 일단 공사판인건 둘째 치고도, 벽면, 기둥, 천정 등 모두의 디자인이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그런 형태였다. 이런게 역시 아르누보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냥 조각하다가 만거 같기도 하고 애매하더군.

먹선으로 그리고 대충 깎은 듯한 천정을 올려다 보자.
이게 다 만든건지 더 다듬을 예정인진 확신이 없다.


공사 현장


성당의 대부분이 공사 현장으로 뒤덮혀 있었으나 인부들은 보이지 않았다. 과연 그들은 언제 일하는 걸까? 왠지 가우디 사후 저 빈공간을 어떻게 채워야할 지 몰라서 고민하는 것만 같았다.

반대편의 탄생 파사드

탄생 파사드에 솟은 4개의 첨탑이다.
이 첨탑들도 이름이 다 있을텐데, 그건 잘 모르겠다.


이 파사드의 조각들을 자세히 보면 역시 예수의 탄생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은 여기에 그려진 조각들을 다 이해하겠지.


이렇게 큰 성당은 내부에 볼꺼리가 너무 규칙없이 흩어져있어서 다 챙겨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안에는 볼꺼리를 1번부터 11번까지 번호를 메겨두고 그걸 하나씩 따라서 이동할 수 있도록 안내표지가 마련되어 있어서 좋았지만, 난 그걸 모르고 대충 돌아서 뒤죽박죽이었다.

그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면,
이렇게 가우디와 자연에 대한 전시물도 볼 수 있다.


아, 또 저 줄 봐라.


이 성당에는 굉장히 타기 힘든 엘레베이터가 두 군데 있다. 이걸 타면 파사드 위로 올라갈 수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걸 스킵할 수는 없으므로 꿋꿋이 2시간을 더 기다렸다. 본래는 1시간 반 정도만 기다리면 된다고 붙어 있길래 기다린 건데, 중간에 45분 표지판을 지난 지점에서 15분을 더 기다렸더니 1시간 표지판이 다시 나타났다. 이런 사기꾼들. 흑흑.

2시간 고생해서 올라가서 보니 저 멀리 뭔가 보인다.


확대해서 보자.
이 건물에 대해서 스페인 텔레포니카 연구소의 한 분과 얘길 나눴는데,
저걸 C**D**이라며 낄낄 거렸다.
역시 세상 사람들 노는건 다 비슷하다 .
예전 이탈리아 피사에선 기울어진 탑이 있으니
과연 기울어진 C**D**도 파는지가 이슈였는데,


올라가서 본 맞은 편의 첨탑 4개.
역시 옥수수를 닮았다.
자연을 사랑한 가우디. 옥수수를 좋아했구나.


시내 정경을 내려다보자.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불어서 좀 무섭다.


2시간 기다려서 올라간 시간이 아까워서 내려올 때는 계단을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가우디의 나선 계단이다.
하지만 곧 후회했다. 어지럽고 위험하고 힘들고 덥고 답답하다.


이미 지쳐서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지하의 전시관.
하지만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면 은근히 볼거리가 많다.



이 성당은 일단은 기부금만으로 지어서 오래 걸린다고 하지만, 관람하던 중 공사하는 인부들은 보지 못했다. 요즘 성금이 잘 안들어오는게 분명하다. 이게 정말 완성이 되려나?

다음에 내가 나이들어 다시 찾아올 때 이게 완성되어 있다면 꽤나 감동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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